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소재한 건물이다. 1927년 최용해(崔鏞海. 1894년경~?)가 백제병원을 개업하면서 세웠던 건물로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 종합 병원이었다. 본 건물은 부산에서 건립된 최초의 개인 종합 병원이다. 그동안 오랜 역사를 거치며 수차례 수리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외관 원형, 벽돌 및 목재 등의 마감 재료도 현재까지 원형 그대로 잘 남아있어 일제 강점기 건축사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2014년 12월 26일 국가등록문화재 제647호로 지정되었다.
부산 동구 중앙대로209번길 16김만덕 객주 위치는 제주시 건입동 1297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개관은 2015년 9월 했다. 건물의 배치는 만덕고가 4동과 객주 시설 4동 총 8동이 모여 있다. 김만덕 객주는 주 음식을 파는 주막동과 관람동으로 나누어져 있다. 만덕고가 안거리는 전,후,좌,우 퇴칸이 있는 삼간초가로서 큰 구들, 작은 구들, 상방, 고방, 찬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덕고가 밖거리는 이문간과 마구간이 있는 5칸 초가집으로 마당에 우물이 있다. 만덕로가 시작되는 초입에 김만덕이 객주집을 차렸던 자리를 다시 복원한 '김만덕 객주 터'가 2015년 완공이 되어 자리하고 있다.
제주시 건입동 1297번지 일원대전광역시 중구 중앙로 101에 위치한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공주에 있던 충청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신축된 건물이다. 한국전쟁 당시 임시 중앙청과 전방지휘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건립 당시에는 2층의 벽돌조 건물이었으나 1960년 무렵 넓은 창을 낸 모임지붕 형태로 3층 부분이 증축되었다.일제 강점기 당시 건립된 전형적 관공서 형태인 'E'자 형태의 평면 구성이며, 외부 마감은 당시 유행하혔던 밝은 갈색의 스크래치 타일을 사용하였다. 세워진 지 70년이 넘은 도청 건물로서 우리 근현대사를 겪어온 건축물로서의 상징성이 크다. 2002년 3월 31일 국가등록문화재 제 18호로 지정되었다.
대전 중구 중앙로 101대구광역시에서 경상북도 영천과 경상북도 포항으로 가는 길목에 반야월이라 불리는 지역이 있다. 대구광역시에는 반야월이라는 행정구역이 없다. 단지 대구광역시 동구 율하동, 신기동, 안심동, 신서동 일대를 지칭하는 지역의 별칭이다. 반야월 역사는 1938년 협궤가 광궤로 확장 개통될 때 건립되었다. 대구선 반야월역은 반야월 주민들의 통근과 통학로인 동시에 화물을 수송하는 중요한 역이었다. 1960년 화물전용 홈이 개설되었고, 1971년부터는 안심 지역의 석탄저장소이자 수송 역이 되었다. 이등변삼각형 모양의 박공이 돋보이는 반야월역사는 일제강점기 후반 남부지방의 표준 역사로 꼽힌다. 대구선이 이설되면서 반야월역은 2008년 폐쇄되었으나, 2010년 인근 대구선 반야월 공원 내로 이전 복원되었다. 반야월역은 2006년 9월 19일 등록문화재 제270호로 지정되었다.
대구 동구 신기동 865-2인천광역시 중구 관동에 위치한 건물이다. 19세기 말 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인천항에서 사업을 운영한 '대화조(大和組, 야마토)'라는 하역회사가 사무소 겸 주택으로 사용한 건물이다. 건립자이자 최초 소유주는 일본인 히로이케데시로(廣池亭四郞)로, 그가 대화조의 대표가 된 해인 1892년 무렵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식 상가 겸용 주택인 마치야(町家, 정가) 형태의 목조건물이다. 현존하는 지상 3층 규모 마치야 건물은 인천 지역에서 이 건물이 유일하며, 전국적으로도 그 예가 많지 않다. 일제강점기 하역노동자의 노동력 착취 현장이라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있다. 2013년 8월 29일 국가등록문화재 제567호로 지정되었다.
인천 중구 관동1가 172020년부터 제물포구락부는 상상력이 맘껏 발휘될 수 있는 공간, 누구에게나 언제나 열린공간, 시민이 큐레이션 하는 공간, 그리고 개항장에 사는 사람, 일하는 사람, 놀러오는 사람들 모두가 만족하는 공간이라는 캐치프라이즈 아래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층은 음악회와 영화감상이 가능한 공간으로 꾸몄다. 제물포구락부의 인천시립박물관 시절 초대 관장 석남 이경성 선생이 1953년 1층을 개조해 서울 미국 공보관에서 영사기를 빌려와 시민들을 위한 무료 영화관을 열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과 전시회, 교양강연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인천 중구 자유공원남로 25현재 문경 산양양조장은 운영자 공모에 선정된 도원우 대표의 리플레이스라는 회사가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유휴공간을 위탁 운영하며 새로운 콘텐츠를 채우는 사업을 통해 양조장 건물을 개조하여 '산양정행소'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지역주민과 방문객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도 열리며 청년들의 지역유입 및 정착을 돕는 멘토링 등을 진행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또 공간과 지역의 특색을 살린 먹거리 및 지역 작가들이 제작한 엽서, 마그넷과 같은 상품도 판매하는 등 지역사회와의 연대 및 청년창업과 문화 부흥을 상징하는 문경의 새로운 문화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산양정행소'로 개조시 오래된 기둥은 썩은 밑동만 잘라내고 새 기둥을 이어 붙였으며 근대 일본식 건물의 특징인 노출된 목조 트러스 구조도 그대로 복원하였다.
경북 문경시 산양면 불암2길 14-5인천광역시 중구 팔미도에 위치한 등대 시설이다. 팔미도는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8km 지점에 있는 바위섬이다. 팔미도 등대는 콘크리트와 석조를 함께 사용하여 지었다. 높이는 등탑 윗부분의 등명기를 포함하여 7.9m에 달하며, 평면은 지름 4.67m의 원형이다. 출입구는 돌로 쌓아 육중한 느낌을 주고, 나무로 만든 오르내리창과 직선의 철제 사다리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이다. 특히 당시에 사용하였던 등명기에는 제작지인 파리와 제작되사 이름이 남아 있다. 소월미도(小月尾島) 등대, 북장자서 등표(燈標), 백암 등표와 함께 처음으로 등명기(燈明機)에 불을 밝힌 등대로 서해와 남해에서 인천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자리하여 해상 교통의 중심으로 기능하였다. 인천상륙작전 수행 시 상륙에 도움을 준 등대로 알려져 있다.
인천 중구 팔미로 28전라북도 전주시 교동에 위치한 가옥이다. 조선 말기에 지은 한식 주택으로 궁중 건축양식을 민간 주택에 도입한 전형적인 예이다. 건축양식은 7량가구(七樑架構)의 곱은자집으로, 꺾이는 부분의 팔작지붕을 독특한 방법으로 처리하고 있다. 암막새와 숫막새, 추녀와 서까래 끝 등을 동판(銅板)으로 싸서 비바람의 해를 방지하였다. 통선창집이며 주초는 호박주초이고, 동편에 기와 난간이 3칸 있다. 우물마루에 모름중방이며, 등내리 문과 완자 밑창은 갑창과 교갑창으로 되어 있다. 이 집을 지은 백낙중(白樂中)은 뛰어난 효자로, 고종으로부터 승훈랑(承訓郞) 영릉참봉(英陵參奉)에 제수되었다. 그가 죽은 후 이런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솟을대문에 당시에 명필 김돈회(金敦熙)가 쓴〈백낙중지려(白樂中之閭)〉라는 현판을 걸어 놓았다. 본채는 백낙중의 호 인재(忍齋) 가운데 인자를 따서 학인당으로 명명하였으며, 효산 이광열의 휘호로 된 현판을 걸었다.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45경기도 광명시에 위치한 종택이다. '오리 이원익 종택'은 선조~인조 때에 영의정을 지내고 청백리로 이름 높던 오리 이원익 선생이 인조(仁祖)에게서 하사받은 집이다. 인조는 오랫동안 재상을 지낸 이원익의 집이 초가인데다 비가 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인조가 경기감사에게 명하여 1630년에 새 집을 하사하면서 가옥의 이름을 '관감당'이라 이름 붙여 주었다. '관감당'은 이원익의 청렴하고 소박한 삶을 '보고 느끼게 하고자 한다'는 뜻이다. 종택은 일부 현대식으로 고친 부분도 있으나 대체로 경기 지역 살림집의 모습이 잘 갖추어져 있다. 1996년 12월 24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0호로 지정되었다.
경기 광명시 오리로 347번길 5-6조양방직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신문리에 위치,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의 방직공장이었다. 조양방직은 일제 강점기에도 기업운영에 있어서 지금의 산재보험과 같은 보험에 가입하여 노동자의 산재에 대비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폐업이후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강화를 대표하는 직물업체는 김재소가 설립한 심도직물로 넘어가게 된다. 그 이후 조양방직 터는 다른 형태로 활용되다가 버려진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조양방직은 1933년 강화지역에 건립된 최초의 민족자본이자 해방 이후 강화지역을 '직물산업의 메카(Mecca)'로 이끌었던 산업유산으로 30년간 방치돼 있던 역사적 건축물의 가치를 민간이 주도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한 사례로 꼽힌다.
인천 강화군 강화읍 향나무길 5번길 12